긴장과 조급함은 다르다.

긴장과 조급함

어떤 압박감이 좋은 것일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압박감으로 판단이 흐려졌던 경험이 있다. 언어 선택이나 기술선택 모두 마찬가지였다. 처리해야할 문제에 급급해져서 제대로된 상황 판단이 어려웠다.

휴식해서 압박감을 풀어낸 뒤, 문제를 해결하고 회고하다가 압박 상황에서 휴식을 해야만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강인함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히, 압박감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어떤 압박감이 필요하고, 어떤 압박감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까?

압박감, 나만의 기준 찾기

흔히들 좋은 압박감과 나쁜 압박감이 있다고 하지만, 떠오른 의문에 충분한 답변이 되지 못했다. 나는 좋은 압박감과 나쁜 압박감을 구분하는 나만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장과 조급함

생각 어디쯤에서 묻혀있던 고민에 대해 갑자기 떠오른 단어는 긴장과 조급함이었다.

압박감이라는 단어는 긴장과 조급함 이외에도 많은 갈래로 갈라질 수 있겠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를 더욱 더 가슴뛰게 만든 압박감은 긴장에 가까웠고 나를 지치게했던 압박감은 조급함에 가까웠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보자면, 잘 설정된 목표가 주는 긴장감과 그것을 성취하기 직전의 과정이 주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내가 가슴뛰게했고

우선순위가 명확하지 않거나 리스크 테이킹에 대한 근거가 너무 부족한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하는 등 제대로 설정되지 못한 목표가 만드는 배드스멜, 그 배드스멜이 시간이 지나고 썩어가면 가지게 되는 조급함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강해지기

긴장감을 다루기 < 제대로 싸우기, 싸울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긴장감을 가졌다면,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한다는 사실을 다시 새긴다. 제대로 설정된 목표라면, 뛰지 않는다면 명확한 게으름이다. 뛴다면 분명한 가치와 만족감을 준다. 제대로 설정된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뛰어지지 못하고 있다면, 목표에 대해 다시 의심해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장될만큼 충분히 난이도 있는 목표가 아니거나, 내 역량에 맞지 않는 목표를 설정했다거나, 우선순위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거나, 내게 명확한 비전을 그려주지 못하고 있다거나. 그런 배드스멜을 느끼는 것

긴장감을 느낄 때 물러나지 않고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목표라면, 쉬는 것보다 뛰는 것이 낫다.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것으로 힘들다면, 아마도 그건 조급함을 다루기로 넘어가게 될 것 같다.

결국 긴장감을 다루는 것은 긴장감 이전의 인지를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정리되었다. 내가 뛰게 만들고 있는 목표는 나를 충분히 긴장하게 만들고 있는가? 가슴뛰게 만들고 있는가? 내가 느끼는 것은 긴장감이 맞는가 조급함이 맞는가? 이것이 첫번째 인 것 같다.

조급함을 다루기 < 제대로 초점 맞추기

목표 설정이 되지 않는 경우 조급함이 생기는 것 같다. 목표는 단순히 회사나 팀이 준 것뿐만 아니라, 주어진 목표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목표의 이면에는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 수학 문제 한 문제를 푸는 것은 동그라미나 가위표를 얻기 위함이 아니고, 코드를 한 줄 치는 것은 예쁘게 만들어진 글자 덩어리를 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가진 문제를 해결해내거나, 누군가가 주어준 문제를 해결해내는 것도 잘 뜯어보면 나의 이면에 있는 무언가를 위해서였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설정한 목표는 제대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내가 팀이나 회사의 일을 도와 해결하고 싶은 조직의 문제는 무엇인가? 문제를 해결해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재 하고 있는 행동은 정말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고 있는가?

판단력이 흐려졌을 때, 초점을 다루기

판단력이 흐려져서 이것이 눈에 안들어오면 방법은 두 가지 였다. 하나는 초점에 대한 판단을 남에게 의존하는 방식이고, 하나는 내가 다시 초점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내가 리더가 아니라면, 조직에서 요구하는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 나을 수 있었다. 리더가 아니라면 결국 책임을 지는 이가 내가 아니다. 판단의 주체가 내가 아닐 수도 있었다. 이런 때는 내가 배드스멜을 느끼고 조급함을 느낀다면, 내 초점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내가 목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었다.

주체적인 삶을 포함해서, 내가 리더라면 그때는 어떻게라든 회고하는 시간을 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면 뭐든 된다. 하지만 뭐가 될지는 경험상 내가 명확히 알고 있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내가 모르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럴때는 조급함과 배드스멜이 난다. 그런 시간 동안에 '그래 나는 도전하고 있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면 그 배드스멜이 썩어갔다.

결국은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명확히 알기위해 회고하는 것, 도식을 만들거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압박감을 다루기 위한 두번째 요소가 아닐까 하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